Daham
모녀, 황학동 그릇시장에 가다 본문
무언가 '해야지' 했던 일들은 대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어디론가 스러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간혹 그런 것들 중 계속 머릿속을 맴맴 돌며 마음에 걸리는 일들도 생긴다.
'아참, 그거 해야되는데.' ... (며칠 후) '하아- 그거 해야되는데, 도무지 짬이 안 나네.' 등등.
울 엄마에겐 황학동으로 그릇을 사러 가는 일이, 바로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엄마의 해치울 일 리스트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왠지 성가셔서 혹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미루어두었던 황학동 그릇사러 가기 프로젝트(?)를 드디어 실행하고야 말았다.
언젠가 레스토랑 오너를 인터뷰하면서 한 번 황학동에 중고그릇을 사러 온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때 사온 몇 개의 파스타 접시를 두고두고 마음에 들어 했다.
식구가 늘어난 요즈음에는, '이 그릇 참 편한데,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다. 가격도 싸고-' 하며
'그릇송'을 불러대셔서 목표는 엄마가 좋아하는 참 좋은 그릇을 몇 개 더 득템하는 거였다.
원래 나는 빈티지 혹은 중고 또는 세컨핸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아, '누가 쓰던 거라 찝찝하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저 중고제품을 찾는 것이 내겐 너무도 번거롭고 귀찮고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건방지게 들릴 걸 알지만 '돈 좀 더 벌어서 새걸 사서 오래 쓰자'가 내 모토였는데,
결혼도 했고 빈티지에 열광하는 몇몇 이들과 친해지면서 중고에 대한 마음도 조금은 달라졌다.
일단 친환경적이기도 하고, 휙휙 바뀌는 트렌드에 비껴나 있는 것들을 구할 수 있는데다,
그릇에 한해서라면 도자기 그릇은 위생적이라 누가 뭘 담았든 깨끗이 닦기만 한다면
기능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것은 가격 메리트.
황학동 중고그릇시장엔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그릇을 살 수 있다.
뭐, 반대의 의미에서 백화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황학동에는 식당을 위한 다양한 집기들을 파는 곳도 있고, 중고 그릇을 파는 곳도 많은데
우리가 간 곳의 평균 그릇 가격은 1,500원~2,000원이다.
다행이 엄마의 '그릇송' 주인공, 한국도자기의 파스타접시(라기보단 수프접시로 만든 듯하지만
엄마는 줄기차게 파스타접시라고 우긴다.)를 득템할 수 있었고,
엄마는 노래를 부르며 한 줄로 차곡차곡 쌓인 접시를 7개나 주워담았다.개당 1,500원착한 가격.
오래된 사발을 대체할 국그릇도 사기로 했는데, 무수한 그릇들 사이에서 정말로 담백한 매력을
뽐내는 녀석을 발견했다. 처음엔 '흠'으로 시작했던 엄마의 반응이 점점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어서, 마침내 마음에 들어 이것도 5개 구입. 바닥을 보니 '돌山'이라는 브랜드 마크가 있었다. 유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 국공기보다는 좀 크고 대접보다는 조금 작은
아주 애매하게 우리가 원하던 크기라서 사온 날부터 당장 사용.
우리가 일식 덮밥용 그릇이라고 생각해서 샀던 건, 사실은 불도장 그릇이라고 했지만.
용도야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른 것이니까.
네 개를 만원에 샀는데 랩에 싸여있었던 걸 풀어서 확인하지 않아서 한 개가 금간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 핸드페인팅이었지만,
장인이 작업한 것은 아닌듯 한 게 그림이 중학생 정도 수준이다. 하핫.
그렇지만 우리집은 가쯔동이나 덮밥, 카레 같은 일품요리를 종종 해먹는 편이라
여러모로 용도가 좋을 것 같아 기대중. 그릇의 선이 워낙 애매해서 뚜껑을 덮으면 약간 어설프지만, 뚜껑은 뚜껑대로 뒤집어서 반찬그릇으로 쓰기로 했다. 사실 뚜껑의 손잡이 부분은 유약이 칠해져있지 않아서 조금 더럽기도 했고. 이런 경우에는 고운 사포로 슬슬 밀어주면 되지만,
에라- 반찬그릇으로 쓰면 되는데 뭐하러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 하고 있다.
그리고 딸내미는 좋아라 하지만 나는 싫어라 하는 뽀로로 그릇을 은근슬쩍 멀리 보내버리기 위한, 양손잡이 수프그릇도 두 개 샀다. 호호홋. 이건 하나에 이천원.
손잡이가 있는 것들, 예컨대 수프그릇이나 머그 같은 것은 손잡이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몸통과의 거리가 충분히 확보되는 것으로 골라야 손을 델 일이 적어진다.
그리고 일식집 엽차잔을 연상케하는, 컵도 두 개 샀다. 골라서 산다고 샀는데 집에 오는 길에 우당탕 운전을 하며 와서 그런지 이가 조금 나가서 속상했다. 하지만 난 중국서 살다가 왔으니까,
그 호방한 합리성을 따라 그냥 쓰기로 했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라 함께 사는 모두가 좋아라 한다. 딸내미 마저도 물 떠다달라 하면 냉큼 그 컵에다 떠온다.
요 컵은 하나에 천원.
내가 절대 반대했지만 엄마가 '뭐 어때-'하며 주워넣은 건 까사렐 반찬접시.
아, 이것도 참 반찬접시라기엔 너무 지나치게 크고 그렇다고 덮밥그릇이라기엔 너무 낮고, 파스타 그릇이라기엔 영 안 예쁘지만 어쨌든 엄마가 샀다. 내가 '어! 이거 까사렐이네. 이거 한국도자기에서 본 브랜드 중에 하난데'라고 말해서 엄마가 급 결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또다른 불도장 그릇. 남성적인 선을 좋아하는 울 엄마는 이 그릇을 보자마자 냅다 챙겼다. 깍두기 담아둘거라며 용도도 미리 정하시고.
하지만 아직까지 깍두기는 그냥 네모난 락앤락에 담겨있다.
그리고 요건 원래 갖고 있던 접시의 작은 버전이라 어울려 쓰려고 하나 샀다.
브랜드는 아올다, 가격은 천원. 딸내미가 엄청 좋아해서 자기 그릇이라고 벌써 찜했다.
그리고 나는 돌아오자마자 황학동 쇼핑(?) 계획을 또 세우고 있다.
이가 나간 작은 엽찻잔도 몇 개 더 사다가 여름이 되면 시원한 보리차를 마셔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음 번엔 요 예쁜 기타를 하나 사다 딸내미에게 선물하련다.
맨처음 멜로디언을 받았을 때처럼 광란의 리사이틀을 보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