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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미덕 :: 무서록 & 뉴스의 시대

베이징댁 2015. 1. 28. 14:13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으나, 읽고 나서는 내가 뭘 읽었는지 모호하기만 했던
<불안>을 지나 그의 글이 비로소 마음에 들어오게 된 건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나서였다.

히드로 공항의 상주작가가 된 그가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공항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공항의 일부인 이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적은 글 중,
유사 이래로 출판과 항공은 제대로 수익을 내는 사업이 아니었다는 내용이 있어
한 번 빵 터지고 격하게 공감하며, '그는 어쩜 이렇게 속시원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감탄한 이후로 그의 신간은 늘 나의 관심 안에 있었다.

나름 그의 신작인 <뉴스의 시대>는 그런 이유로 읽게 되었다.
뉴스의 시대는 날씨, 정치, 경제, 인터뷰 등 뉴스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관해
보통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논평한 내용이다.

잡지사의 기자, 혹은 에디터로 일하면서
늘 언론인인듯 아닌듯, 언론인이긴 한가 하는 의구심 속에서 살아온 내게
뉴스란 건 나와는 다른 세상의 어떤 첨예함 같은 거였다.

그런데 보통은 각각의 뉴스가 전달되고 기능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파헤치면서
뉴스의 소비자인 내가 느끼고 있던 불편함, 자격지심 같은 것들을
족집게 도사처럼 콕콕 집어서 이야기하고 있어 놀라기도 했고, 다시 한 번 감탄.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된 무서록은 월북작가인 이태준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다른 출판사 버전도 있지만, 왠지 제목과 어울리는 듯도 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들고 다니며 읽을 겸해서 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범우사의 문고판을 샀다.

무서록에 쓰인 글들은 모두 1930-4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문장의 표현은 옛스럽되, 내용은 전혀 옛스럽지 않아 깜짝 놀라게 되었다.

'스피드의 시대'라던지, 문자보다는 그림이 정보 전달면에서 효율이 있다는 등의
내용은 그의 시대보다 몇 십년이 지난 현재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말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우정관계를 다룬 글이라던지 하는 것도,
현대의 청춘남녀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비슷한 즈음에 읽은 이 두권의 에세이는

"에세이도 충분히 묵직한 글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전에 내게 에세이란, '개인적인 사변이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고,
그렇기에 내가 쓰려는 글의 범위 안에 에세이란 포함되지 않았다.
뭔가 알맹이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치기 어린 허영이 강하게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이들의 에세이에는 <통찰력>이 담겨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세대를 넘나들며 읽는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

좋은 에세이에는 <통찰>이 담겨있다는 것,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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