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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타나토노트 vs. 스푸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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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타나토노트 vs. 스푸크

베이징댁 2015. 1. 5. 17:14

죽음은 쉽지 않은 소재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지만, 누구나 가능한 한 뒤로 미루고 싶은 것.
(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만, 나는 얇고 길--게 이승에서 구르고 싶은 사람이라.)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가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가
죽음 그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기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죽음 이전의 세계에서 익숙해져있던 모든 것을 뒤로 해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일까?

덕분에 죽음은 그 의미의 참을 수 없는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재로 고대 문학에서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주가 이루어졌다.
단테의 <신곡>이나 이집트와 티베트에서 모두 쓰여진 <사자의 서> 등은 모두 이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만하다.

 

비교적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 - <타나토노트>와 <스푸크>- 는
둘 다 출간된 지 오랜 책이지만, 내 레이더에 들어와 읽힌 것은 최근인터라
꽤 재미있게 읽었다.

두 권의 책은 모두 '죽음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다루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다루어졌던 풍부한 고전(?)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점과

소설과 과학 에세이라는 필터의 차이가 자못 흥미롭다.

 

<타나토노트>는 기막힌 편집기술을 보여준다. 

<타나토노트>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몇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가장 주축이 되는 것은 마취과 의사인 미카엘의 기록이다.
영계탐사단이 꾸려지고 수없이 실패하고, 성공가도를 달리며 모험과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종말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모두 그의 회고록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죽음'과 이후의 삶에 천착했던 라울의 아버지가 모은 자료들,
예컨대 티베트 <사자의 서>의 내용과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사후세계에 관한 지식(... 이걸 지식이라 해야하나...) 등이
회고록 사이사이에 서술된다.

 

그리고 경찰기록을 통해 등장인물들에 관한 프로필과 상황에 개입할 필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하는 내용과 영계탐사가 이미 일반화 되었음을 짐작케하는
시험문제 등도 간간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장치들 덕분에 미카엘의 회고 내용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설득력을 얻음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술임에도 덜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당장 영화로 만들 수 있을 듯한 구성이랄까. 

대략적인 스토리라인은 이렇다.
어느 날 프랑스 대통령인 뤼생데르가 저격을 당한다.
그러던 그는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하게 되고 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죽음에 집착하는 생물학자 라울과 그의 친구이자 마취의인 미카엘을 주축으로
영계탐사단을 꾸린다. 초창기의 실패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죽음 너머의 세계로 떠났지만, 어쨌거나 이들의 영계탐사는 성공하게 되고 점차 발전해 영계는 7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중들은 영계에 관한 내용이 발표될 때마다 이에 감응하여 평화의 시기가 오기도 하고, 돈으로 더 나은 내세를 사는 시기가 오기도 한다. 그 사이에 미카엘은 아내인 로즈를 구하기 위해 영계에서 천사들에게 부탁해 아내를 살려내기도 한다.
안 읽은 이들을 위해 내용은 여기까지만. ㅋㅋㅋㅋ


<타나토노트>에서는 죽음의 임계점에서 영혼이 빠져나오고, 영혼은 은빛 실로 몸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정한다. 대충 이런 느낌인가?

흥미로운 것은 미카엘의 행보가 스토리 모델 중 영웅의 여행 모형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영웅의 여행 모형'은 할리우드의 스토리 디렉터인 크리스토퍼 보글러가 정리한 것인데, 우리가 좋아하는 많은 스토리가 이 모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영웅의 여행모형은 12개의 장을 3개의 막으로 나누는데,
일상세계, 모험에의 소명, 소명의 거부, 정신적 스승과의 만남, 첫 관문의 통과까지가 1막에 해당된다.
2막에서는 시험, 협력자, 적대자를 만나거나 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의 접근, 시련, 보상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귀환의 길, 부활, 영약을 가지고 귀환하는 것이 제 3막이자 마무리로,
위기는 2막에서,  클라이막스는 3막이라고 보면 된다.

책 읽은 분들은 한 번 적용시켜 보시길. ㅋㅋㅋㅋㅋ

 

 

반면 스푸크는 죽음 이후에 관한 사람들의 궁금증의 역사를 파헤친다. <타나토노트>가 죽음을 다룬 고전 텍스트를 상상력의 바탕으로 삼는다면 <스푸크>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취재하고 문헌을 조사해서 온전히 메리 로취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스푸크>를 통해 영화 <28g>으로 제작되기도 했던 영혼의 무게를 재는 실험이 실제로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밝히거나, 엑토플라즘이라 여겨졌던 실제의 증거물(사실은 냄새나는 직물인 경우가 태반이었다.)을 찾아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영매학교에 등록하기도 한다.


이런 기이한, 하지만 한편으로는 논리적인 행보에다
메리 로취 특유의 유머감각이 더해진 글 때문에 <스푸크>는
과학 에세이라기보다는 낄낄대며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에세이 (빌 브라이슨과 약간 비슷한 느낌도 들지만, 메리 로취는 왠지 그보다는 좀 따듯한 느낌이다.)에 가깝다.


엑토플라즘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 어떻게 보아도 천을 입에서 뱉어내는 것인데,
어렸을 때는 왜 이런 것이 그럴듯 해보였을까?

생각해보면, 엑토플라즘이니 강령술이니 하는 것들을 어렸을 때에 엄청 신기하게 여기고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희미하게나마 난다.
그 영향 때문이겠지만, 나는 아직도 이런 류의 판타지에 흥미를 느낀다.
(여전히 슈퍼내추럴과 그림이 흥미로운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메리 로취의 <스푸크>를 두 번이나 읽고 나니
너무나도 뻔히 들여다보이는 이런 수작들이
어렸을 때에는 왜 그렇게 신비롭고 흥미진진하게 와 닿았던 것일까?
아마도 어렸을 때에는 좀 덜 논리적이었고, 덜 시니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더 옛날에, 이런 것들이 최고의 지식인들조차 매료시킨 그 시절에
살았던 이들도 마찬가지일는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 뿐"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아직도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떤지 모른다.
우리가 영혼의 형태로 계속 이승을 살아가게 될 지,
아니면 스위치를 내리듯 그냥 그걸로 끝인 것일지,
혹은 내세라는 것이 있어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서 살게 될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설득력있는 증거를 가진 사람도 없다.
단지 사이비일지언정, 나름 스스로를 크리스찬이라고 여기는 내 입장에서는
내가 죽은 후에 가야할 천국이 그곳에 살기 위한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ㅋㅋㅋㅋ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이상,
죽음은 언제나 우리기에 미스테리한 존재로 남을 것이고
죽음에 관한, 죽음을 소재로 하는 문학과 각종 저작들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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