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ham
유쾌발랄 과학저술가의 신작, <꿀꺽, 한 입의 과학>:메리 로치 본문
교보문고를 산책하듯 슬렁슬렁 걷다가, 베스트셀러 칸을 구경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들여다보는 건 대개 구입 목적이라기보단,
요즘 어떤 책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
알아보는 동시에, 아주 조금은, 그곳의 책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안해요, 마케터님들.)
그러다 <꿀꺽, 한 입의 과학>을 발견.
메리 로치? 이름이 낯익은데- 하고 집어 들어 저자 소개를 보니 역시나 내가 좋아라 했던
책의 저자였다.
내가 읽었던 그녀의 전작은 시체에 관한 <스티프(Stiff)>와 영혼에 관한 책<스푸크(spook)>다.
뭔가 써놓고 나니 굉장히 '긱geek'한 느낌이긴 한데, 사실 이 두 권의 책은 엄청 재미있다.
대부분의 공은 유쾌하고 '캐'발랄한 메리 로치의 시선과 글에 있지만
시체라던가 사후세계, 영혼이라는 야매스럽고 선정적인 주제를 지극히 과학적으로,
한편으로 과학을 겁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해주는 점도 한 몫 한다.
나는 인간에 관한, 삶에 관한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기를 바라는 사람이지만, 어떨 땐 과학적이어야 하는 것은 비과학적으로 접근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들에 지나치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메리 로치는 일반 과학저술가들이 관심을 갖지 않거나 기피하는 주제들을
과학적으로 다루어준다는 것, 그리고 풍부한 인터뷰와 자료조사를 통해 믿을만 한 정보들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존경받아 마땅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 책 <꿀꺽, 한 입의 과학>은 코에서 항문까지,
사람의 소화기관에 관한 거의 모든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전 책들은 한 번에 하나의 챕터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고 하면
이 책은 한 장이 끝나는 무렵에 그 뒤의 소화과정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이 제기되어
꽤나 유기적으로 술술 연결되는 느낌이다. 우리의 길고 긴 소화관이 모두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책이 코에서 시작되는 것부터가 선입견을 깨뜨린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소화과정이라는 것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음식을 선택하고 맛 보는 모든 과정의 최전방에는 '코'가 자리잡고 있다.
코를 막고 먹으면 양파나 사과를 제대로 구분할 수 없는 것만 봐도 그렇지만
그녀는 코의 역할을 제대로 알기 위해 애완동물 사료를 만드는 곳을 찾아가는 등
한층 업데이트된 최신의 정보를 전달해준다.
침이라는 것이 사실은 상당히 위생적일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쩌면 사람의 소화기관이 제대로 조명되거나 연구되거나
혹은 식탁 위의 화젯거리로 올라오지 않는 건,
침, 위산, 트림, 방귀, 대변 같은 소화 관련 요소들이 사회적으로 '더럽다'(혹은 우습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더럽다'라고 치부해 버리기 전에
우리는 그것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에 관해 묻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입 안에 있는 침은 마시는 물만큼이나 깨끗하고 무해'한데도
입 밖으로 나온 침에 대해서는 더럽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침에는 소화효소와 항균성분이 함께 있어 입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활약을 하는데다, '에이즈의 원인균인 HIV도 침에는 꼼짝 못한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런 진기하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예컨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결장이 지독한 변비 때문에 너무 커졌다던지 하는 것도 포함해서.
'소화'라는 과정을 찾아 세계 여기저기를 누비며 많은 전문가와 과학자들을 만나는 메리 로치를
따라가며, 우리가 '더럽다'라는 이유로 인식 밖의 일로 여겼던 모든 것에도 역시
'과학이 깃들여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후의 가장 멋진 수확이다.
사랑과 더불어 <과학은 어디에나 있지요(Science is all around)>라는 느낌이랄까.
더불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겸손한 마인드를 장착하게 되는 것도.
오는 5월 1일 노동자의 날부터 6일 석가탄신일까지,
골든위크를 보낼 방법을 딱히 계획해놓은 것이 없다면
느긋하게 뒹굴면서 메리 로치의 책을 시리즈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아주 훌륭하고 지적인 연휴가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