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ham

음식에 관한 흥미로운 단편들:: 18세기의 맛 본문

오만잡다 책읽기

음식에 관한 흥미로운 단편들:: 18세기의 맛

베이징댁 2014. 6. 7. 15:55

소위 '먹방'이 대세인 시대다.

 TV에선 셀러브리티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음식을 한 입 떠넣은 다음,
눈을 크게 뜬 다음에 '음~!!!' 하는 감탄사를 내뱉고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맛을 칭찬하는
장면을
24시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한 책들을 몇 권 고르게 되었다.
그 중의 한 권으로, 18세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각자의 연구분야 중
'맛'을 테마로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일단 각 편의 글이 길지 않아, 짧은 글 읽기에 특화된 디지털 세대들에게도 부담없을 뿐더러
'맛' 혹은 음식이라는 대세를 반영하는 주제이다보니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또 여러 학자들이 쓴 글이다보니,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 한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3국의
18세기 음식문화까지 널찍한 세계를 아우르고 있어
이 중 한 편의 글이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기는 어려울 듯하다.

TV 속의 맛보다 활자 속의 맛을 택한 이유는
음식의 맥락을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선남선녀가 (때론 비호감인 출연자들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고
환희를 느끼는 장면을 보는 건 아무래도 단편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뭐, 맛있는데 어쩌라고?'하는 정도의 기분이랄까.

반면, 활자가 가득한 책에는 시각을 자극하는 멋드러진 음식 사진은 없지만
(대신 18세기의 상황을 보여주는 도판은 있다. ^-^;;;)
버터와 교황청의 관계라던지, 영국인들이 왜 홍차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감자는 언제부터
우리의 식탁에 올랐는지, 정조가 고추장을 사랑했던 이유랄지 하는 것들이
시대적 맥락 속에서 역사와 함께 제시된다.

 

나는 언제나 '왜?'가 궁금한 인간인지라, 학자들이 들려주는 앞뒤좌우의 맥락들이 흥미로웠다.
또한 잡다한 지식을 탐닉하는 터라 이런 백과사전식의 책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누구한테 선물하기에도 딱 적당한 책인듯하다.
'먹고' 사는 문제야 누구한테나 중요한 일이지만, 턱 밑까지 숨이 차오르며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느긋하게 인생의 '맛'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테니 말이다.

 

덧붙이기>>
딱히 18세기였는지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군침이 꿀꺽 넘어가는 옛 유럽의 음식 묘사를 읽고 싶다면
소설 <시식시종>을 추천한다. 한참 전에 읽은 책이지만 끼적여두었던 리뷰가 있어 함께 덧붙인다.

옛 리뷰 -------------------------------------------------------------------------

아. 이 책은 소설과 자서전의 애매한 경계에 놓여있다.
책의 표지에는 피터 엘블링이 '옮겼다'라고 되어 있는데
그가 손에 넣은 필사원본이라는 것이아무래도 미심쩍기 이를데 없다.

게다가 원작자가 살던 지역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니!
게다가 소작농에서 시식시종이 된 주인공이
그리스 신화에 대한 지식을 그리도 풍부하게 갖추고 있기가
어렵지 않을까. 뭐, 판단은 독자 각각의 몫이다.

덧붙이자면, 이 책을 '옮긴' 피터 엘블링은
어렸을 적 나를 열광하게 했던 '아이들이 줄었어요'의 시나리오를 썼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옮겼다'는 책이니, 창작인지 옮긴건지 긴가민가한데
그래서 더 귀엽고 해학적인 느낌이랄까.

아, 시식시종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 했어야 했다.
시식시종은 말 그대로 '시식'을 담당하는 시종으로,
영주가 음식을 먹기 전 미리 음식을 먹어보는 직업이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우고 디폰테가 원했던 직업은 아니지만.
게다가 그가 섬기는 영주는 포악하기 이를 데 없어서
원체 적이 많은지라 누구라도
그를 독살하고자 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상황.

그리하여 전체적인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우여곡절 끝에 시식시종이 된 우고 디폰테가
매일매일 두세 번씩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이야기다.

그 과정이 아슬아슬,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어서
책을 펼쳐 읽은 지 딱 두 번만에 이야기의 끝을 봐버렸다.
중세 이탈리아에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재미있을만한 소설.

----------------------------------------------------------------------------------

옛 리뷰에 좀 더 덧붙이자면,
시식시종인 우고 디폰테가 매 끼니마다 먹는 음식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위에 소개한 <18세기의 맛>과 연동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18세기의 맛'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면 읽어도 좋겠고
'학구적인 것은 부담스러워' 생각한다면 이것도 괜찮겠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