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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교정을 보다가:: 저자와 편집자의 문제

베이징댁 2014. 12. 8. 15:33

그러지 않는 것이 좋다 생각하지만,
오늘은 빈정상한 일을 토로하고 싶어 포스팅을 작성합니다.

12월에 나올 예정인, 그러나 내년 초에 나올 것 같은,
단행본의 저자교정을 보는 중이거든요.
그런데 교정지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욱- 우욱- 욱- 하고
화가 불쑥불쑥 납니다.

 

       A3 출력, 피바다가 된 교정지.


"제 글이 김훈 선생님이나 신경숙 선생님처럼 멋진 글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원고가 너무 바뀌어서, 제가 쓴 게 아닌 것 같아요." 라는
말로 시작해 편집자와의 길고 긴 통화를 했고,
더러운 성질머리를 다스리며
나름 나이쓰-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리고 편집자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교정지를 들여다보니 화가 나는 건,
제가 아직 '미생'이기 때문이겠죠. 휴우-

 

저자인 나의 원고가 고스란히 그대로 출간되는 일은요,
출판사들이 선인세를 빵빵하게 드리고라도 모시고 싶은 작가들에게나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확고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또 편집자들이 감히 그걸 건드리지 않을 때요.

 

편집자의 변은 이렇습니다.
요즘 독자들은 긴 호흡의 문장이나 글보다는 짧은 글에 더 익숙하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는 어쩌구저쩌구 중얼중얼 적은 저의 글을
탁.탁.탁. 토막 내어서 짧은 문장 여러 개로 만들었더군요.

제 글에는 부연이 좀 많았어요.
책 자체가 여기저기 구경다닌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서,
아줌마 입장에서 편안하게 수다 떠는 느낌이면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설레발도 좀 치고, 형용사도 넣고, 비유도 듬뿍 넣었죠.
그런 것들을 체로 거르듯 싹, 걸러내셨더라고요.

이런 일들은 단행본 출간 과정에서
저자와 편집자가 스스로의 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왕왕 생겨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저자는 물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편집자는 저자의 글을 잘 다듬고
출판 시장에 맞게 제작하는 과정에서 저자와 디자이너와 인쇄소를 아우르고
토닥거리는 일을 하지요. 지휘자와 같은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편집자는 저자의 글에 대해, 자신이 만드는 책에 대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저자의 글은 그러면 꼭,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이 쓴 글대로
출간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둘 다 좋은 책을 세상에 내어 보이는 데에 공통적인 목표가 있죠.
그래서 편집자와 저자는 서로 조율을 잘 해야합니다.
서로를 존중해야하는 것도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편집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편집자들이 쓸모 없는 문장이라며 잘라낸 그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저자들은 때로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는 것을요.
이미 쓰여진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바꾸고 표현을 고치는 것보다
생각의 흐름을 정리해 최초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렵고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요.

제발, 고치기 전에 물어봐라도 주셔요.
"이건 왜 들어간 거죠? 꼭 필요한 내용인가요? 빼도 되나요?"

 

아니면 제가 쓴 세 문장을 하나의 새로운 문장으로 고치기 전에,
아예 원고를 이런이런 방향으로 손을 봐달라고 이야기 해 주셔요

 

 

아, 속상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95% 공정이 끝난 상황에서
글을 모두 다시 바꿔달랄 수도 없으니, 마음 다스리며 교정이나 마저 볼랍니다.

그저, 다음 번에 단행본을 낼 때에는 편집자와 이야기를 잘 해야겠다- 결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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